motion picture

미스트, 그 짙고 짙은 안개 속으로의 여정

두억시니 2008. 1. 30. 16:18
※ 영화 내용이 포함되어 있을수 있으니, 영화를 보실분은 이 글을 읽지 마세요.



퇴근직전 전화가 왔다.

P : 영화보러 가자
D : 볼만한 영화가 있나?
P : <마법에 걸린 사랑> 볼까?
D : 그래. 자리는 있어?
P : 맨 앞에 달랑 두 자리 남았네. 다른거 보자.
D : 그거 말고 볼만한 영화도 없잖아?
P : 그냥 속는 샘 치고 미스트 볼까? 오늘따라 공포영화가 보고 싶네?
D : 왠일이야. 그래 나도 보고 싶다. 보자!

이것이 사건(?)의 발단이었다.
아무 기대 없이, 아무런 정보 없이,
감독/배우도 모르고, 정확한 영화의 장르도 모르고, 원작/원작자도 모르고,
정말로 아무것도 모르고 극장을 찾았다.

물론 어느정도 예상을 해버린 것도 있었으니,
몇년전 개봉했던 공포영화 <더 포그(The Fog, 2005)>정도 해줄것이고, 대충 안개속에서 사람들이 하나하나 잔인하게 죽어나가다가 결국 안개의 미스터리는 밝혀지고 살 사람은 살고 죽을 사람은 죽는 그런 나만의 시나리오를 머릿속에 그리고 있었다. 진정한 미국식 공포라면 화면 가득 유혈이 낭자한 것이 먼저 떠오르고 어떻게 보면 유치하기까지 한 제목 <안개(The Mist)>라는 단어에 기대를 하기 힘들었다.

mist
1
a 안개 《★ fog보다 엷고, haze보다 짙음》
2  (수증기로 인한 유리의) 흐림, 김에 서림; (눈의) 흐림
3 뜻[판단, 이해, 기억]을 흐릿하게 하는 것, 정신을 못 차리게 하는 것
4 [the mists] 《문어》 안개에 싸인 과거, 태고
5 (향수·약 등의) 분무(제) 《of》



"빌어먹을!!! 프랭크 다라본트 감독이네!"

내가 극장앞 영화 포스터를 보고 처음으로 던진 말이다. 길거리에 붙어있던 영화 포스터를 유심히 보지 않았던건, 왠지 싸구려 B급 호러물 일꺼라 미리 짐작해버렸기 때문이다. 내가 생각해 왔던 프랭크 다라본트(Frank Darabont) 감독은 유명한 작품이라고는 발음하기도 힘든 쇼생크 탈출(The Shawshank Redemption) 달랑 하나 만들어 놓고 거장이라는 딱지를 붙여버린 감독이라고만 생각해왔다. 하지만 아무 내용도 없이 잔인하기만 한 B급 호러물을 만들 감독은 아니라는건 믿고 있었다.

"아 다행이야~ 적어도 60점 이상은 하겠구나." (안도의 한숨)

서론이 너무 길었나?^^ 이제부터 본격적으로 영화 리뷰를 적어보도록 하겠다.



감상문의 첫 글자를 쓰기 위해 수많은 고민을 하였다. 어떻게 키보드를 두드려야 이 심장의 충격을 글로 옮길수 있을까? 영화가 끝나고 ending credit 이 올라갈때 상황을 그대로 적자면, 난 충격에 머리를 숙여 앞 좌석에 기대었고 지금까지 봐왔던 2시간 가량의 영화 내용을 다시 머리속에 정리하기 힘들었다. 내 머리 CPU 처리 한도 초과인가? ㅎㅎ

힐끗,
옆자리 함께 본 녀석, 이해가 안가는 눈치다.

(두근두근)
심장이 두근 거린다.

D : 어땟어?
P : 글쎄 난 잘 모르겠어.
D : 어디가?
P : 끝장면이 잘 이해가 안돼.
D : 그럼 내가 이해한걸 설명해줄께 어떤가 들어봐.

(주절~ 주절~)

2시간 생각했던 단어들.
종교, 사회, 다수결, 정의, 선 과 악, 극 과 극 등등.
감독은 한치 앞도 내다 볼 수 없는 안개를 통해 많은 것을 비유적으로 보여준다.

등장인물들의 성격도 너무나 다양했지만 이야기의 핵심이 되는 주인공의 성격은 한번더 생각해 보고 지나가야 할 부분이었다. 가족을 사랑하고, 합리적이며, 리더십이 강하고, 대인관계가 원만한, 정의의 사도랄까? 한마디로 힘/민/체/지/정 이 조화를 이룬 전형적인 주인공 캐릭터라고 해야겟다.ㅎㅎ

영화가 끝나기 30분 전쯤 이었을까? 귓속말로 속삭였다.

'이거 어떻게 끝낼려고 이렇게 판을 크게 벌려놓냐?'

그런 주인공이 보여주는 마지막 엔딩은 개인적으로 생각할때 너무나도 완벽(?) 하여 이 영화를 단순한 B급 괴물/공포 영화로 만들어 버리질 않았다. 그럼 너가(우리가) 바라는 엔딩은 주인공이 안개를 빠져나가 수평선에 떠오르는 태양을 바라보며 여주인공과의 사랑이 이루어지고 잘먹고 잘살아야 하는거야?

아니다. 정말 아니다. 감독/원작자는 내가 생각했던 정의 자체를 부정했고 마치 나의 보잘것없는 상상력을 비웃기라도 하듯 너무나도 놀라운 장면을 보여준다. 그 장면을 이끌어 내기까지 수많은 이벤트, 주인공과 너무나도 비교되는 주변인물들이 있었고, 대사 하나하나가 이러한 엔딩을 위해 존재했다고 이해해 버렸다.

왜? Why?  난 왜? 라는 단어를 좋아한다.

왜 생존자는 5명이고 남아있는 총알은 4발인가?
왜 그토록 죽기를 바랬던 사람들이 살아남아 버린 것인가?
왜 이리도 유치해 보일 정도의 디자인된 괴물들이 판을 치고 다니는가?
왜 주인공 아내의 죽어있는 장면을 보여줘야 했을까?
왜 괴물은 그 여자를 죽이지 않았을까?
왜 도대체 왜?

이렇게 많이 '왜' 라는 단어를 여기저기에 붙여본 영화는 메트릭스 시리즈 이후 거의 없었던것 같다. 나의 상상력으로는 감독/원작자의 어마어마한 세계를 눈으로 따라가는 것만으로도 가슴 벅찬 일이었고, 영화를 보고 난 이후에도 이렇게까지 많은 생각할 기회를 주는 영화도 드물었다. 나는 지금 스스로의 과대망상에 사로잡혀 반쯤 미친 상태로 이런 글을 쓰고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까지 들었으니 말이다.

무섭지 않았다.
이 영화는 어쩌면 전형적인 헐리우드 괴물 영화를 답습한다고 생각했지만 분명 무엇인가 다른점이 있었다. 4차원 괴물 보다 인간의 모습에 더 큰 비중을 두었다고 해야할까? 조그마한 마트안에서 수십명의 사람들이 구성한 우리 사회의 축소판 같은 모습을 보며 공감하면서, 공포에 떨기보단 웃어버릴수 밖에 없었다.



영화의 첫부분 기억에 남는 신(scene) 이 있다.
정확히 기억은 안나지만 첫번째 희생자가 나오는 장면이었는데 너무나 독특했다.
대사를 정리 하자면...

주인공 : 밖에 뭔가 있어.
다혈질 : 그냥 밖에 잠깐 나가서 내가 문제를 처리하고 올께.
희생자 : 아냐. 내가 나가 볼께. 나한테 맡겨줘.
주인공 : 정말 내 말을 믿어줘 정말 뭔가 있다니까.
다혈질 : 잘난척 하지마.
희생자 : 맞아. 별것도 아닌걸로 호들갑 떨기는...

대충 이런 대사였는데, 다시 생각해 보면 다른 영화들과는 다른 독특한 부분이 있었다.
위의 대사는 계속 이어진다. 이상하리 만큼, 마치 100분 토론의 <나가야 하는가 말아야 하는가>라는 주제를 놓고 토론을 한다고 해야할까? 보통은 위의 대사만 마치고 주인공의 권유를 무시한 희생자는 바로 황천행 하는 뻔한 대사인데 유난히 길게 장면을 잡아주신다. 단순히 러닝타임을 맞추기 위한 장면이 아닌 독특한 장면이었다. 내가 이 영화에 빠져들기 시작한 첫번째 장면이라 유난히 기억에 남는다.



종교.
이 영화를 진정한 공포영화로 만들어버린 요소. 덜덜덜.-_-;;;
웃기기도 했지만 그 종교가 만들어 놓은 결과물은 너무나 무서웠고 여기서 다수의 힘/권력에 대해 괴물보다 더 무서운 공포를 봐야했다. 빌어먹을!!!

'제발~ 대가리에 쏴버려!'(외쳐버렸다.)
세상에! 주인공이 내 마음을 읽었다.



두서 없는 엉망진창의 이 리뷰를 정리 해보자면, 난 이렇게 생각한다.
(이렇게 결론을 내린다고 써놓고 뭐라고 결론을 써야하나 십여분째 고민 中)

아~ 못하겠다. 내 머리의 한계를 초과했나보다. 내 심장이 느낀걸 글로 옮기는게 이리도 힘든적도 없던것 같다. 감동이 아닌 충격 이라는 단어가 어울릴 법한 영화였다. 내가 하는 일이 옳은가? 그른가? 정의는 무엇이고, 신은 무엇이고, 그 사이의 인간이란 무엇인가? 계속 생각하고 또 생각하게 만든다. 하지만 그 생각에 너무나 기분이 좋다. 글로만 표현하기 힘들 뿐이지 아직 가슴은 두근거린다. 언젠가 다시 이 영화를 감상할 기회가 있다면 그때 다시 생각해 정리해 보기로 한다.

영화를 만들어주신 감독, 원작자, 배우, staff 등등 모두들에게 너무 고맙다. 그저 고마울 뿐이다. 앞으로도 영화에 대해 더 생각나는 부분이 있다면 계속적으로 이 리뷰를 수정해 나아가겠다.

(2008/01/24 13:31)





내용을 갱신 합니다. 인터넷을 돌아다니다가 아주 멋진 리뷰(네이버 gshyw02 님)가 있어서 퍼왔습니다.(이하 퍼온글)



나 혼자 제정신이어봐야, 아무 소용 없어.





아주 기분이 좋은 날이 있다. 왠지, 그냥. 마냥...

그런 날, 즐거운 기분으로 외출을 했는데

갑자기 설사가 났다.... 휴지도 없다.. 화장실도 안보인다...

하다못해 인적 드문 골목길 따위도 없고, 화장실 비슷한것도 없는 상황.

좋았던 기분이고 나발이고 일단 당황한다.

처음엔 나름대로 이 사태를 어떻게 해결해야 하나, 흥분하지 말자, 이성적으로 생각하자 하겠지.

하지만 결국 이성이고 뭐고... 나를 위협하는 생리적, 원초적인 상황에선

이성과 합리,논리 이런건 아무것도 아닌게 되는거다.



이 영화 '미스트'를 보면서 느낀감정은 너무너무 다양하고 다양하다.

종교에 미친 여자가 나올땐, 아 정말 저런 사람이 우리나라에만 있는건 아니었어... 하면서 깔깔대며 웃은것은 물론,

지랄맞은 생물체들 나올땐, 진짜 캐식겁 완전 질겁을 했다. 아, 어쩜 그리 생긴것도 비호감인거냐..



근데 뭐 결론적으론 그렇다.

아무리 나 혼자 정상적으로 잘 살아봤자, 제정신으로 꿋꿋이 견디고 버텨봤자, 아무 소용없다.

내 의지와 뜻과 상관없이, 상황은 악화일로를 걸을수도 있고...



영화안에서, 세상을 봤다.


착하고 성실하게 살아봤자, 진실은 가난하고 결과는 지리멸렬하다.

착한 사람이 위기에 빠진 사람을 구하고 돕다 죽는건 다반사고,

남한테 피해한번 끼친적 없이 조용히 길가다가 운없으면 칼맞아서도 죽고,

순진하고 착한 아이들이 하루아침에 변사체로 발견되는건 더이상 놀랄일이 아닌게 되었다.

정신 살짝 놓고 미친듯 살면, 사기치고 등쳐먹고 못되쳐먹게 살면, 결국 그런 사람이 잘사는 세상.

목숨을 위협하는 아찔한 상황에선, "절대" 라고 믿었던 모든 규범과 가치관이 한순간에 무너진다.



아. 뭐 암튼 그랬다.

컴퓨터 그래픽이 좀 조악하기도 했고.

사실 "이 영화 참 완벽해!" 라고 말하긴 부족한 부분이 많이 보였지만.

가볍게 넘길수도 있는 영화기도 하고, 심각하고머리아프게 만드는 영화이기도 하다.


같이 본 친구랑 우스갯소리로 한말.

"졸라 웃기고 졸라 무섭고 졸라 짱나고 졸라 잼나다 그치?"

ㅋㅋ 저게 정답이네.ㅎㅎ



----- 여기까지 퍼온글 끝 -----




내가 정리하지 못한 내용을 너무나 깔끔해 정리해 주셔서 퍼올수 밖에 없었다.(ㅠ_ㅜ)감동
미스트. 기억에 남을 영화가 되버렸다.